부동산 법률 일반

착공이 5년 8개월 늦어졌는데 배상은 0원 — 공사정지 지연배상금은 착공 지연에 쓸 수 없습니다

부만변 2026. 8. 4. 08:59

세 줄 요약

공공공사 계약서에는 발주처 잘못으로 공사가 60일 넘게 멈추면 발주처가 돈을 물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47조 제4항입니다.

 

그런데 삽을 뜨기도 전에 발주처 사정으로 5년 넘게 기다린 경우에는 이 조항을 쓸 수 없습니다. 착공 지연은 공사정지가 아니라는 것이 2026 5월에 확정된 대법원의 결론입니다(대법원 2026200798).

 

기다린 손해는 계약기간 연장 신청과 계약금액 조정, 곧 간접공사비 쪽으로 받아야 합니다. 다만 그 통로도 신청을 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고, 산출내역서를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받는 금액이 갈립니다.

이 글이 답하는 질문

1. 공사정지 지연배상금이란 무엇인가요

2. 착공 지연과 공사 정지, 무엇이 다른가요

3. 착공신고서를 냈으면 착공한 것 아닌가요

4. 1심은 49억을 인정했는데 왜 뒤집혔나요

5. 그러면 기다린 5년의 손해는 어디서 받나요

6. 간접공사비 5 7천만원은 왜 깎였나요

7. 산출내역서를 어떻게 써야 하나요

8. 계약기간 연장은 언제까지 신청해야 하나요

9. 변경계약서에 무엇을 적어야 하나요

10. 준공하고 나서 청구해도 되나요

11. 민간공사에도 같은 결론이 나오나요

12. 오늘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나요

근거 조항과 판례 일람

근거 정한 내용 쉬운 말로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11조 제1 공사용지의 확보와 계약상대자에 대한 인도를 발주기관의 의무로 정함 땅을 마련해 주는 것은 발주처 몫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17조 제1 착공 시 현장기술자 지정신고서, 공사공정예정표, 안전·환경 및 품질관리계획서, 공정별 인력 및 장비투입계획서, 착공 전 현장사진 등이 포함된 착공신고서를 제출하도록 정함 착공하려면 내야 하는 서류 목록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23조 제1 공사기간이 연장된 경우 실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계약금액을 조정 실비가 천장이지 바닥이 아님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25조 제1 계약상대자의 지체상금은 준공기한을 넘긴 경우에 발생 수급인은 늦게 끝내야 물어냄. 늦게 시작한 것만으로는 아님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25조 제3항 제3 발주기관의 책임으로 착공이 지연되거나 시공이 중단된 기간은 지체일수에 산입하지 아니함 여기서는 착공 지연과 시공 중단을 나누어 적고 있음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26조 제1 25조 제3항 각 호의 사유가 계약기간 내에 발생하면 계약기간 종료 전에 지체 없이 수정공정표를 붙여 계약담당자와 공사감독관에게 서면으로 연장을 신청. 사유가 계약기간이 지난 뒤 끝난 경우에는 끝난 후 즉시 신청 연장은 자동이 아니라 신청 사항. 기한도 있음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46조 제1항 제2 공사정지기간이 공기의 100분의 50을 넘으면 계약상대자가 계약을 해제·해지할 수 있음 너무 오래 멈추면 빠져나올 수 있음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47조 제1 현장감독자가 공사의 전부 또는 일부의 이행을 정지시킬 수 있는 경우를 열거 정지는 감독자가 시키는 것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47조 제4 발주기관의 책임 있는 사유에 의한 공사정지기간이 60일을 넘으면, 그 초과기간에 대하여 잔여 계약금액에 초과일수 1일마다 금융기관 대출평균금리를 곱하여 산출한 금액을 준공대가 지급 시 지급 이 글의 주인공 조항
공사계약 특수조건 제23조 제1(이 사건 계약) 간접노무비를 실비와 산출내역서상 일평균 간접노무비 중 적은 금액으로 산정 산출내역서가 상한이 됨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 또는 조건을 정하지 못함 부당특약 금지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6조 제1 계약내용의 변경으로 계약금액을 조정할 때 실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조정 여기서도 실비는 천장
민법 제398조 제2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음 예정액은 깎일 수 있음
대법원 2026. 5. 29. 선고 2026200798 47조 제4항은 착공 후 공사가 정지된 경우에 적용되고, 착공 자체가 지연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아니함 이번 확정 판결
대법원 2021. 12. 10. 선고 2020300336, 300343 정지지시 근거조항이 열거한 사유가 발생하여 감독직원이 이행을 정지시킨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고 본 사례 감독자의 정지지시가 요건
대법원 2020. 1. 9. 선고 2015230587 정지에 따른 추가금액 청구권과 60일 초과 지연배상금 청구권은 별개의 규정이라고 본 사례 두 갈래를 각각 쓸 수 있음
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4201650 지연배상금채권은 잔여 공사대금을 늦게 받는 손해를 보전하는 것으로 그 성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 그래서 감액이 가능함
대법원 2009. 7. 23. 선고 200882155 계약금액 조정은 사유가 생겼다고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적법한 조정신청과 계약담당공무원의 수용이 있어야 이루어짐 신청하지 않으면 못 받음
대법원 2016. 12. 15. 선고 2016238540 상대방에게 중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계약 내용은 문언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 발주처에 돈을 물리는 조항은 좁게 읽음
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3228152 위와 같은 취지 같음
대법원 2017. 12. 21. 선고 201274076 전원합의체 공공계약도 사법상 계약이고, 다소 불이익하다는 것만으로 부당특약이 되지는 아니함 특수조건은 웬만하면 유효
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310533 건축법상 공사 착수는 굴착이나 축조를 개시하여야 하고, 철거·벌목·부지 조성·진입로 개설만으로는 착수가 아님 준비만으로는 시작이 아님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4. 9. 5. 선고 2022가합9061, 수원고등법원 2025. 9. 4. 선고 202425608 착공대기기간의 간접공사비 등을 청구하여 상당 부분 인용된 사례 통로를 바꾸면 받을 수 있음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 2009 12월입니다. 착공일도 그달로 적혀 있었습니다.

 

시공사는 착공신고서를 냈습니다. 현장기술자 지정신고서, 착공 전 현장사진, 하도급 시행계획서까지 함께 넣었습니다. 현장에 나가 지장물을 조사하고 현황을 측량했습니다. 예정공정표를 만들고 설계도서를 검토했습니다.

 

그런데 땅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발주처가 확보해 주어야 할 사업부지의 보상 절차가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2010 7, 발주처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사업 추진 현황을 알린다는 제목이었고, 내부 검토보고서에는 공사를 일시 중지해야 한다는 결론이 적혀 있었습니다. 시공사는 다음 날 서류를 하나 냈습니다. 지연착공신고서였습니다.

 

그 뒤로 5 8개월을 기다렸습니다. 현장관리인은 계속 두었습니다. 발주처는 2012년부터 여러 차례 현장관리 방안을 통보하고 착공을 준비하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실제로 착공한 것은 2015 8 24일입니다.

 

공사는 2021 6월에 끝났습니다. 계약금액은 363억원에서 571억원으로 늘었고, 발주처는 계약서에 적힌 공사대금을 전액 지급했습니다.

 

시공사는 준공 직후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계약서에 이런 조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발주처 잘못으로 공사가 60일 넘게 멈추면, 초과한 날마다 남은 계약금액에 대출평균금리를 곱한 돈을 발주처가 지급한다.

 

기다린 기간은 1,875, 60일을 뺀 1,815일이 남았습니다. 남은 계약금액은 363억원, 그 무렵 금리는 연 5.45퍼센트였습니다. 곱해 보니 98 5,776만원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공기 연장에 따른 간접공사비 차액 5 7,526만원을 더해 총 104억원을 청구했습니다.

 

1심은 49억원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전부 뒤집혔고, 2026 5 29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0원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무엇이 갈랐는지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1. 공사정지 지연배상금이란 무엇인가요

공공공사 계약서에는 계약서 본문 말고도 일반조건특수조건이 붙습니다. 일반조건은 기획재정부가 계약예규로 정해 둔 표준 문서이고, 특수조건은 발주기관이 그 공사에 맞추어 따로 붙이는 조건입니다. 둘 다 계약의 일부입니다.

 

일반조건 제47조는 공사를 일시 정지시키는 일을 다룹니다. 1항에서 현장감독자가 공사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경우를 열거하고, 4항에서 그렇게 멈춘 기간이 길어졌을 때 발주기관이 물어야 할 돈을 정합니다.

 

4항의 계산은 단순합니다. 정지기간이 60일을 넘으면, 넘은 날마다 남은 계약금액 × 금융기관 대출평균금리 ÷ 365를 지급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금리는 한국은행 통계월보에 나오는 금융기관 대출평균금리를 씁니다.

 

이 돈의 성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입니다. 실제로 얼마를 손해봤는지 따지지 않고 미리 정해 둔 방식으로 계산한다는 뜻입니다(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4201650 판결). 그래서 실손해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고, 대신 법원이 과다하다고 보면 깎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2. 착공 지연과 공사 정지, 무엇이 다른가요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계약서는 둘을 나누어 적고 있습니다.

 

일반조건 제25조 제3항 제3호는 수급인의 지체일수에서 빼 주는 기간을 정하면서 발주기관의 책임으로 착공이 지연되거나 시공이 중단된 기간이라고 씁니다. '착공 지연' '시공 중단'을 나란히, 그러나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대법원은 제47조 제4항이 이 중 뒤엣것, 착공 후 공사가 정지된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보았습니다. 근거는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문언입니다. 조항에 '공사정지' '잔여 계약금액'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공사가 시작되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를 전제로 한 표현입니다. 한 삽도 뜨지 않았는데 '남은 계약금액'을 말하는 것은 어색합니다.

 

둘째, 조항의 체계입니다. 47조 제1항이 열거한 정지 사유들은 대부분 공사가 진행 중인 상태를 전제로 합니다. 계약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유는 이미 시공된 부분이 있어야 판별할 수 있고, 안전을 위해 정지가 필요하다는 사유도 착공 전에는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형평입니다. 수급인 쪽 지체상금은 준공기한을 넘겼을 때만 발생합니다. 착공이 늦었다는 것만으로는 물어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발주처도 착공 지연만으로는 물어내지 않는 것이 균형에 맞습니다.

 

넷째, 엄격 해석의 요청입니다. 상대방에게 중대한 책임을 지우는 계약 내용은 문언을 더 엄격하게 읽어야 한다는 법리가 있습니다(대법원 2016. 12. 15. 선고 2016238540 판결, 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3228152 판결). 발주처에 100억원 가까운 돈을 물리는 조항이므로 좁게 읽었습니다.

 

다섯째, 다른 통로가 있다는 점입니다. 착공이 늦어져 입은 손해는 계약기간 연장 신청과 계약금액 조정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조항을 좁게 읽어도 수급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항소심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탰습니다. 47조 제4항은 60일이 지난 시점의 남은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공사가 진척될수록 남은 금액이 줄어 배상금도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착공 지연에까지 이 조항을 쓰면 공사 도중에 멈춘 경우보다 아예 시작도 못 한 경우에 더 많은 돈이 나오는 결과가 됩니다. 그런 해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판단의 뿌리에는 앞선 대법원 판결이 있습니다. 용역계약의 같은 구조 조항에 대하여, 정지지시 근거조항이 열거한 사유가 생겨 감독직원이 이행을 정지시킨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고 본 판결입니다(대법원 2021. 12. 10. 선고 2020300336, 2020300343 판결). 정지지시의 대상이 될 공사가 진행 중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3. 착공신고서를 냈으면 착공한 것 아닌가요

시공사가 가장 강하게 다툰 지점이 여기입니다. 계약서에 적힌 착공일에 착공신고서를 냈고, 현장에서 지장물을 조사하고 측량까지 했으니 이미 착공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습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계약서의 일반조건과 특수조건 어디에도 착공이 무엇인지를 정한 규정이 없습니다. 정의가 없으니 말의 뜻대로 읽을 수밖에 없고, 착공은 글자 그대로 공사의 착수를 말합니다.

 

이 공사의 공정은 가로수·가로등 등 지장물을 철거하고, 상수·우수·오수 관로를 옮기고, 새 관로에 물을 통한 뒤 기존 관로를 철거하며 터를 파고, 가도를 포장하고 가배수로를 설치하는 순서였습니다. 항소심은 아무리 넓게 보아도 지장물 철거에 이른 시점에서야 착공이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서류 제출은 어떻게 보았을까요. 일반조건 제17조 제1항은 착공할 때 착공신고서를 내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항소심은 이것이 착공을 하려면 서류를 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일 뿐, 서류를 냈으니 착공했다는 근거 규정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지장물 조사와 현황측량도 본격적인 착공에 앞선 준비행위로 보았습니다.

 

항소심은 각주에서 건축법의 예를 들었습니다. 건축신고를 하고 1년 안에 공사에 착수하지 않으면 신고의 효력이 없어지는데, 여기서 말하는 공사 착수는 굴착이나 축조를 시작해야 인정되고 기존 건물 철거, 벌목, 부지 조성, 울타리 가설, 진입로 개설만으로는 착수로 볼 수 없다는 판결입니다(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310533 판결). 부지 정지공사와 정화조 설치까지 마쳤어도 착수가 아니라고 본 사안입니다.

 

그리고 시공사가 스스로 낸 서류의 이름이 남았습니다. 지연착공신고서입니다. 아직 착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적어 낸 문서였습니다.

4. 1심은 49억을 인정했는데 왜 뒤집혔나요

1심은 정반대로 읽었습니다. 논리도 탄탄했습니다.

 

47조 제4항은 공사의 정지라고만 하고 있지 착공 후로 범위를 좁히지 않았다는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25조 제3항 제3호가 착공 지연과 시공 중단을 함께 적고 있는 것과의 균형도 들었습니다. 정지기간이 공기의 절반을 넘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제46조를 들어, '공기'는 계약상 착공일부터 세는 것이므로 실제 착공 전에도 정지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

 

발주처가 공문에서 공사 일시 중지, 공사 재개, 재착공이라는 표현을 쓴 점도 근거가 되었습니다. 발주처 스스로 그 기간을 공사가 멈춘 기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지지시가 있었는지도 인정했습니다. 조항은 현장감독자가 정지시킨 경우를 말하는데, 현장감독자는 발주처가 임명한 기술직원이나 감리원이므로 발주처의 공문이 곧 정지지시라고 보았습니다.

 

발주처의 귀책도 인정했습니다. 공사용지 확보와 인도는 일반조건 제11조 제1항이 발주처의 의무로 정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사건에서는 다른 지구의 지하차도 공사를 통합해서 시행하기로 한 결정이 계약 체결보다 3년 이상 앞선 시점에 이미 있었습니다. 추가 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태로 성급하게 발주했다는 것이 1심의 판단이었습니다.

 

발주처가 "시공사와 합의해서 멈춘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배척되었습니다. 발주처 내부 공문에 시공사 의견으로 "용지보상 완료 시까지 공사를 중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대등한 지위에서 합의했다거나 배상 청구를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1심도 금액은 절반으로 깎았습니다. 실제로 착공 전이라 인력과 장비를 본격적으로 투입한 비용이 없어 실손해가 크지 않은 반면, 계산 기준이 되는 남은 계약금액은 최초 계약금액 전액이 되어 예정액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이유였습니다. 정지기간에 들인 비용은 공사 재개 후 변경계약으로 대부분 반영되었고, 계약금액도 363억원에서 571억원으로 늘어난 점도 들었습니다.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50퍼센트를 감액해 49 2,888만원을 인정했습니다.

 

항소심과 대법원이 뒤집은 지점은 하나입니다. 금액이 과다한지가 아니라, 애초에 그 조항을 쓸 수 있는 사안인지였습니다. 청구권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고 보았으므로 감액을 따질 단계에도 이르지 않았습니다.

 

숫자로 보면 이렇습니다.

심급 결론 금액
청구 지연배상금 98 5,776만원 + 간접공사비 5 7,526만원 104 3,303만원
1 지연배상금 인정 후 50퍼센트 감액, 간접공사비 기각 49 2,888만원
항소심 조항 적용 자체를 부정, 전부 기각 0
대법원 상고기각, 확정 0

 

소송비용도 남았습니다. 1심에서는 감정비용을 시공사가 부담하고 나머지 소송비용의 45퍼센트를 시공사가 졌는데, 항소심에서 소송 총비용을 시공사가 전부 부담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5. 그러면 기다린 5년의 손해는 어디서 받나요

대법원이 직접 답을 적어 두었습니다. 계약기간 연장 신청과 계약금액 조정입니다(일반조건 제25조 제3항 제3, 26조 제1·4).

 

구조는 이렇습니다.

 

첫째 갈래는 계약기간 연장입니다. 발주처 책임으로 착공이 지연되거나 시공이 중단된 기간은 수급인의 지체일수에서 빼 줍니다. 준공이 늦어도 지체상금을 물지 않게 하는 장치입니다.

 

둘째 갈래는 계약금액 조정입니다. 기간이 연장되면 그만큼 현장을 더 오래 유지해야 하므로 비용이 듭니다. 현장 직원 인건비, 사무실과 장비 임차료, 보험료, 각종 경비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을 간접공사비라고 부릅니다. 일반조건 제23조 제1항과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6조 제1항이 실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정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갈래는 제47조 제4항의 지연배상금과 별개입니다. 대법원은 지방자치단체 공사계약의 같은 구조 조항에 대하여, 정지에 따른 추가금액 청구권과 60일 초과 지연배상금 청구권은 서로 특별규정과 일반규정의 관계가 아니라 별개의 규정이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0. 1. 9. 선고 2015230587 판결). 한쪽으로 소송을 해서 확정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쪽 청구를 배척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착공대기기간의 간접공사비를 청구해 상당 부분을 받아낸 사건이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한 정수장 고도정수처리시설 공사에서 시공사들이 간접공사비 등 37억원가량을 청구해, 1심에서 약 18 8,600만원이 인용되었고 항소심에서 9,100만원가량이 더 붙었습니다(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4. 9. 5. 선고 2022가합9061 판결, 수원고등법원 2025. 9. 4. 선고 202425608 판결).

 

같은 착공 대기인데 통로가 다르면 결과가 다릅니다. 지연배상금 조항으로 간 사건은 0원이고, 간접공사비로 간 사건은 절반 남짓을 받았습니다.

6. 간접공사비 5 7천만원은 왜 깎였나요

이 사건 시공사도 간접공사비를 청구했습니다. 그런데 이쪽도 졌습니다. 이유가 실무에서 더 중요합니다.

 

공사 도중 두 번째 공기 연장이 667일 이루어졌습니다. 시공사는 실비를 기준으로 계산해 17 7,700만원의 계약금액 조정을 신청했습니다. 발주처는 다른 기준으로 계산해 11 1,600만원을 주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기준이 달랐던 이유는 계약서의 특수조건 때문입니다. 이 사건 특수조건 제23조 제1항은 간접노무비를 실비와 산출내역서상 일평균 간접노무비로 계산한 금액 중 적은 쪽으로 산정한다고 정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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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는 우선 발주처 계산대로 기성을 청구하되 차액을 나중에 다시 청구하겠다는 이의 유보를 걸어 두었고, 소송에서 차액 5 7,526만원을 청구하면서 그 특수조건이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가 금지하는 부당특약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특수조건이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판단 기준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나옵니다. 공공계약도 사경제 주체로서 대등한 지위에서 맺는 사법상 계약이므로 사적 자치가 원칙이고, 어떤 특약이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한다고 하려면 다소 불이익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 기대에 반하여 형평에 어긋나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7. 12. 21. 선고 201274076 전원합의체 판결).

 

그 기준에 비추어 법원이 든 이유는 네 가지입니다.

 

실비는 천장이지 바닥이 아닙니다. 일반조건 제23조 제1항과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6조 제1항은 실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정한다고 되어 있을 뿐, 실비만큼은 보장한다는 규정이 아닙니다.

 

법령은 상한만 정하고 산정 방식은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빈 자리를 특수조건이 채운 것이므로 법령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실비 산정은 분쟁을 부릅니다. 연장될 때마다 실제 지출을 개별적으로 따지려면 시간과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이 공기 연장 때문인지를 두고 다툼이 남습니다. 산출내역서 기준은 그 다툼을 줄입니다.

 

산출내역서는 시공사가 스스로 낸 문서입니다. 대형 공사에서 공기 연장 가능성은 계약 당시에도 예상할 수 있으므로, 그 가능성에 대비해 간접노무비를 합리적으로 계상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1심에서 기각되었고 시공사가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7. 산출내역서를 어떻게 써야 하나요

앞의 판단을 뒤집어 읽으면 실무 지침이 나옵니다.

 

산출내역서의 일평균 간접노무비는 나중에 받을 돈의 상한선이 됩니다. 입찰 단계에서 낙찰을 위해 간접노무비를 눌러 적으면, 공기가 늘어났을 때 실제로 그만큼 돈을 썼더라도 눌러 적은 금액까지만 받게 됩니다.

 

특히 볼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 특수조건에 산정 방식이 따로 적혀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일반조건만 보고 "실비를 받겠다"고 생각하면 어긋납니다. 특수조건 제23조에 산정 기준을 정해 둔 발주기관이 적지 않습니다.

 

, 산출내역서의 간접노무비 항목이 실제 현장 운영비와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 계산해 두십시오. 그 차이가 공기 연장 1일마다 발생하는 손실입니다. 계약 전에 계산해 두면 입찰가를 짤 때 반영할 수 있고, 계약 후에는 협상의 근거가 됩니다.

8. 계약기간 연장은 언제까지 신청해야 하나요

여기가 실무에서 가장 많이 깨지는 지점입니다.

 

일반조건 제26조 제1항은 연장 사유가 계약기간 안에 발생하면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지체 없이 수정공정표를 붙여 계약담당자와 공사감독관에게 각각 서면으로 신청하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유가 계약기간 안에 생겼는데 계약기간이 지난 뒤에 끝난 경우에는 그 사유가 끝난 뒤 즉시 신청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자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에 관하여, 조정 사유가 발생했다고 하여 그 자체로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계약상대자가 계약담당공무원에게 적법한 조정신청을 하고 계약담당공무원이 이를 받아들이는 의사표시를 하여야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09. 7. 23. 선고 200882155 판결).

현장이 멈춰 있을 때 내야 할 서류는 지연착공신고서가 아니라 계약기간 연장신청서입니다. 이름이 비슷해 보여도 하는 일이 정반대입니다. 앞의 것은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문서이고, 뒤의 것은 기간과 돈을 조정해 달라는 신청입니다.

9. 변경계약서에 무엇을 적어야 하나요

앞의 200882155 판결에는 실무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문장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사건에서 시공사는 계약기간을 늘리는 수정계약을 맺었습니다. 그 수정계약서에는 수정 대상으로 계약기간만 기재하고, 그 밖의 사항은 원 계약 내용과 변동이 없음을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 문구를 근거로, 계약금액 조정 없이 기간만 연장하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건설사 공무 담당자가 무심히 넘기는 문장 하나가 청구권을 지웁니다.

 

변경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확인할 것은 이렇습니다.

 

· 계약금액 조정 신청을 이미 냈다면 그 사실과 아직 정산되지 않았다는 취지가 변경계약서에 남아 있는지

 

· "그 밖의 사항은 원 계약과 같다"는 취지의 포괄 문구가 조정 청구를 지우는 방향으로 읽히지 않는지

 

· 조정 금액에 이견이 있다면 이의를 유보한다는 문구를 서면으로 남겼는지

 

이 사건 시공사도 이의 유보는 걸어 두었습니다. 유보를 걸었기에 소송으로 다툴 수 있었습니다. 다만 특수조건이 유효하다고 판단되어 결과적으로 차액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유보는 다툴 자격을 지키는 장치이지 이기는 장치는 아닙니다.

10. 준공하고 나서 청구해도 되나요

이 사건 시공사는 준공기한이 지난 2021 7월에야 지연배상금을 주장했습니다. 발주처는 그동안 여러 차례 계약금액 조정과 공기 연장을 거치면서 한 번도 말을 꺼내지 않다가 준공 후에 100억원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어긋난다고 항변했습니다.

 

법원은 이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발주처가 스스로 마련한 일반조건의 조항에 근거해 청구하는 것일 뿐이고, 청구하지 않겠다는 신뢰를 줄 만한 적극적인 행동이 있었다고 볼 자료가 없으며, 장기간 변경계약을 맺어 가며 공사를 계속해야 하는 수급인의 처지에서 즉각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이 판단은 시공사에게 유리한 부분입니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는 청구권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결론에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늦게 청구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권리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조정 신청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신의칙 항변은 배척되어도, 신청하지 않아 조정이 성립하지 않았다는 항변은 통합니다.

11. 민간공사에도 같은 결론이 나오나요

이번 판결은 공공공사 계약의 표준 조항을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든 논리는 계약 해석의 일반 법리입니다.

 

문언이 명확하면 문언대로 읽고, 명확하지 않으면 동기와 경위,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거래 관행을 종합해 합리적으로 해석하되, 상대방에게 중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은 더욱 엄격하게 해석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6. 12. 15. 선고 2016238540 판결, 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3228152 판결).

 

민간 도급계약에서도 발주자 사정으로 착공이 늦어지는 일은 흔합니다. 인허가가 지연되거나, 명도가 끝나지 않거나, 자금 조달이 늦어지는 경우입니다. 계약서에 "발주자 귀책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이라고만 적혀 있다면, 이번 판결의 논리대로 착공 전 대기기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읽힐 위험이 큽니다.

 

민간계약에서는 고칠 수 있습니다. 계약서를 쓸 때 다음 세 가지를 넣어 두시면 이번 사건 같은 다툼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하나, 착공의 정의를 적으십시오. "착공이란 ○○ 공정에 실제로 착수한 때를 말한다"는 한 줄이면 됩니다. 이 사건에서 계약서에 착공의 정의가 없었던 것이 다툼의 출발점이었습니다.

 

, 착공 지연을 명시적으로 넣으십시오. "발주자의 귀책사유로 착공이 지연되거나 착공 후 공사가 중단된 경우"라고 두 가지를 나란히 적어 두면 됩니다.

 

, 대기기간의 비용 정산 방식을 적으십시오. 현장 유지 인원과 월 단위 금액을 정해 두면 나중에 실비를 증명하는 부담이 사라집니다.

12. 오늘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나요

현장이 멈춰 있거나 착공이 밀리고 있다면, 오늘 계약서 파일을 열어 다음 네 조항을 나란히 놓고 읽으십시오.

 

일반조건 제47조 제1항과 제4정지지시의 주체와 사유, 60일 초과 시 배상 계산식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일반조건 제25조 제3지체일수에서 빼 주는 사유에 착공 지연이 들어 있는지.

 

일반조건 제26연장 신청의 기한과 제출처, 붙여야 할 서류가 무엇인지.

 

특수조건 제23간접공사비 산정 방식이 일반조건과 다르게 정해져 있는지. 이 한 조항이 이 사건에서 5 7천만원을 갈랐습니다.

 

그리고 서류 한 장을 준비하십시오. 계약기간 연장신청서입니다. 수정공정표를 붙여 계약담당자와 공사감독관에게 각각 서면으로 내십시오. 이메일이나 구두 협의만으로는 남지 않습니다.

 

발주처 담당자라면 반대 방향에서 같은 작업이 필요합니다. 사업부지 확보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발주하면 착공 대기기간이 길어지고, 지연배상금은 피하더라도 간접공사비 조정 요구는 남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1심은 "추가 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 성급하게 발주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발주 시점의 부지 확보 상황을 문서로 남겨 두는 일이 결국 방어가 됩니다.

 

공사대금 분쟁은 계약서의 조항 번호 하나, 서류의 제목 한 줄에서 갈립니다. 저는 공사대금과 기성 정산, 공기 연장과 간접공사비를 둘러싼 사건을 여러 건 다루어 왔습니다. 계약서와 그동안 오간 공문을 들고 오시면 어느 조항이 열려 있고 어느 조항이 닫혀 있는지부터 함께 짚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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