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사기 사건을 다루다 보면, 처음부터 속일 의도가 있었던 임대인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계약 당시에는 분명히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있었는데, 부동산 시장 침체와 금리 인상이 겹치면서 모든 것이 무너진 임대인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형사 피의자가 되어 수사를 받으면서 "나는 처음부터 속인 게 아닌데"라고 호소합니다.
반대로, 임대인의 허위 정보를 그대로 전달했다가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린 공인중개사들도 있습니다. "임대인이 알려준 대로 썼을 뿐인데 왜 내가 책임을 지냐"는 항변은 법적으로 얼마나 통할까요?
1. 임대인 입장 —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Q. 계약할 때는 진짜 돌려줄 수 있었는데, 나중에 못 돌려주게 됐습니다. 이것도 사기죄인가요?
아닙니다. 법원은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계약 체결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그 이후 경제사정의 변화 등으로 채무불이행 상태에 이르게 된 것만으로는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습니다(창원지방법원 2023. 1. 12. 선고 2022노1618 판결). 계약 당시 반환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이후 경제사정 악화로 보증금을 못 돌려주게 된 것은 민사상 채무불이행(계약 위반)에 불과하고 형사 사기죄가 아닙니다.
Q. 그렇다면 어떻게 '계약 당시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나요?
이것이 핵심입니다. 수사기관은 계약 당시의 재정 상태를 역추적합니다. 계약 당시 계좌 잔액, 부동산 자산 현황, 금융기관 대출 상태, 세금 납부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합니다. 따라서 임대인은 다음 자료를 미리 준비해두어야 합니다.
계약 체결 당시의 재산 목록(부동산, 예금, 주식 등), 금융기관 대출 잔액 및 상환 이력,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위한 구체적 노력의 기록(부동산 매각 시도, 대출 신청 내역, 임차인과의 협의 내용 등)이 있으면 "처음부터 속인 것이 아니라 나중에 사정이 나빠진 것"임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법원도 "기업경영자가 파산에 의한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태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고, 계약이행을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었을 때에는 사기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21. 8. 12. 선고 2020노2835 판결).
Q. 경제사정이 나빠졌을 때 임차인에게 먼저 알리는 것이 법적으로 유리한가요?
매우 유리합니다.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임차인에게 이를 즉각 알리고 협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첫째로 임차인이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등 자구책을 마련할 기회를 주고, 둘째로 임대인의 선의를 입증하는 증거가 되며, 셋째로 사기죄 성립 여부 판단에서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합니다.
Q. 보증금을 못 돌려줄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파산 또는 개인회생 절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십시오. 이는 채무를 법적으로 정리하고, 임차인에게 법적 절차를 통한 구제 기회를 제공하며,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임대인의 파산 또는 회생절차 개시는 오히려 임차인이 전세사기피해자법상 피해자 결정을 받는 데 도움이 되는 요건이기도 합니다.
2. 임대인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
경제사정이 나빠졌더라도 다음 행동은 사기죄 성립의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선순위 보증금 축소 고지
다른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실제보다 적게 알려주는 것은 그 자체로 기망행위(속임수)입니다. 법원은 "임대인이 고지한 선순위 보증금 총액이 모두 실제보다 적은 금액이었다는 점은 고의적 축소 고지의 강력한 증거"라고 판시했습니다(부산지방법원 2021. 11. 23. 선고 2020고단2111 판결). 착오로 잘못 알려줬다면 실제보다 많은 경우도 섞여 있어야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무자력자에게 임대인 지위 이전
재산이 없는 사람에게 집을 팔아 보증금 반환 의무를 넘기는 것은 임차인에 대한 기망행위로 인정됩니다. 법원은 "새로 임대인이 될 매수인의 자력이나 재산상태가 임차인에게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자력자에게 임대인 지위를 이전하면서 이를 고지하지 않는 것은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의정부지방법원 2025. 2. 13. 선고 2024노3192 판결).
3. 공인중개사 입장 — 임대인이 알려준 대로 썼는데 왜 내가 책임을 지나요?
Q. 임대인이 선순위 보증금을 알려줬고 저는 그대로 확인·설명서에 기재했습니다. 그래도 책임이 있나요?
임대인이 알려준 정보가 허위였다면, 공인중개사가 그 허위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는지가 핵심입니다. 단순히 임대인의 말을 그대로 전달한 것만으로는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닙니다.
대법원은 "임대인이 자료 제공을 거부하더라도 다가구주택의 규모와 전체 세대수, 인근 유사 부동산의 임대차보증금 시세 등을 확인하여 선순위 임대차보증금채권이 얼마나 있을 수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5. 12. 4. 선고 2024다283668 판결). 즉, 임대인이 자료를 거부하더라도 공인중개사는 독자적으로 추정하여 설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Q. 임대인이 자료 제공을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최소한 다음 두 가지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첫째,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임대인이 자료 제공을 거부하였음"을 명시적으로 기재하십시오. 단순히 "선순위 다수 있음을 구두로 설명함"이라고만 쓰는 것은 부족합니다. 대법원은 이런 기재 방식이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5. 12. 4. 선고 2024다283668 판결).
둘째, 건물 규모, 세대수, 인근 시세를 기반으로 선순위 보증금 추정 금액을 산정하여 임차인에게 서면으로 설명하십시오.
Q. 신탁등기가 있는 부동산을 중개할 때 특별히 주의할 점이 있나요?
있습니다. 신탁등기가 있는 부동산을 중개할 때는 반드시 신탁원부를 열람하여 임차인에게 제시하고, 신탁회사의 사전 승낙 없이 체결된 임대차계약은 신탁회사에 대항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설명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이를 공인중개사의 법적 의무로 명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23다224327 판결).
4. 공인중개사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
Q. 공인중개사가 책임을 지게 되면 보증금 전액을 배상해야 하나요?
원칙적으로 임차인이 회수하지 못한 보증금 전액이 손해액입니다. 다만 임차인에게도 스스로 확인할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통상 30~40% 정도 과실상계(피해자 책임 비율만큼 배상액을 줄이는 것)가 적용됩니다. 즉 공인중개사는 보증금의 60~70% 정도를 배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공인중개사가 임대인 측과 특수관계(예: 임대인 회사의 임원)에 있으면서 선순위 임차인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긴 경우에는 과실상계 없이 보증금 전액을 배상해야 할 수 있습니다(대구지방법원 2024. 12. 17. 선고 2024가단128560 판결).
마치며 — 부동산 분쟁은 결국 '타이밍'의 문제입니다
3편에 걸쳐 전세사기의 유형과 징후, 피해자의 법적 대응 전략, 그리고 임대인과 공인중개사의 입장을 살펴봤습니다.
부동산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임차인이라면 이상 징후를 발견한 즉시 가압류를 신청하고 피해자 결정을 받아야 합니다. 임대인이라면 경제사정이 나빠지기 시작할 때 임차인에게 먼저 알리고 법적 절차를 통해 정리하는 것이 형사 처벌을 피하는 길입니다. 공인중개사라면 임대인의 말만 믿지 말고 독자적으로 확인하고 서면으로 남겨야 합니다.
전세사기 관련 분쟁은 부동산 권리관계, 형사 사기죄, 민사 손해배상, 행정 절차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어느 한 분야만 잘 안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부동산 분야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장재호 변호사 | 부동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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