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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 분양계약 해제와 위약금 청구 — 신탁회사는 정말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

부만변 2026. 4. 20. 09:25

장재호 변호사 | 부동산 전문

 

분양 계약을 맺고 입주를 기다리다 공사가 멈춰버린 경험, 혹은 그런 뉴스를 접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시공사 부도 사태가 잇따르면서,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이 "계약을 해제하고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요즘 분양 사업의 상당수는 관리형 토지신탁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쉽게 말해, 시행사(사업을 기획한 회사)가 직접 분양하는 것이 아니라, 신탁회사가 분양자의 지위를 맡아 계약서에 서명하는 구조입니다. 이때 계약서 특약에는 흔히 이런 문구가 들어갑니다.


"매도인은 신탁재산 및 신탁계약의 업무범위 내에서만 책임을 부담한다."

 

이 한 줄이 수분양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법원은 이를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최근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6. 2. 26. 선고 2023280945 판결)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이 사건은 어떤 사건인가

 

사건의 배경

 

창원시 진해구에 오피스텔 신축·분양 사업이 있었습니다. 시행사 C가 사업을 기획하고, 신탁회사 B(피고)가 관리형 토지신탁계약을 체결하여 분양자의 지위를 승계했습니다. 수분양자 A(원고)20187월 신탁회사 B와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납부했습니다. 입주예정일은 201912월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공사 F가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하고 20203월 시공권 포기각서를 제출했습니다. 입주예정일로부터 3개월이 훌쩍 지나도록 오피스텔은 준공되지 않았습니다. 수분양자 A는 계약서에 정해진 약정해제권을 행사하며 계약금 반환과 위약금 지급을 요구했습니다.

 

신탁회사 B는 이에 맞서 여러 가지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 중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공사가 늦어진 것은 시공사 F 탓이지 우리(신탁회사) 탓이 아니다."

둘째, "계약서 특약에 '신탁재산 범위 내에서만 책임을 진다'고 되어 있으니, 우리 회사 고유재산으로는 책임을 질 수 없다."

 

이 두 가지 주장이 1, 2, 대법원을 거치며 어떻게 판단되었는지가 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2.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는가

 

시공사의 잘못은 신탁회사의 잘못이다

 

신탁회사는 "시공사가 공사를 멈춘 것이지, 우리는 신탁계약에서 정한 준공기한(20207) 안에 준공을 마쳤으니 귀책사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분양계약서에 입주예정일이 '201912'로 명시되어 있고, 신탁회사는 분양자로서 그 기한까지 오피스텔을 인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시공사를 선정하여 공사를 맡긴 것도 신탁회사이므로, 시공사의 공사 중단으로 인한 입주 지연은 분양자인 신탁회사 측의 귀책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신탁계약 내부에서 정한 준공기한은 신탁계약 당사자들(우선수익자 등) 사이의 기준일 뿐, 수분양자와의 관계에서 신탁회사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탁재산 범위 내 책임' 특약은 효력이 없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자, 대법원이 처음으로 명확한 법리를 선언한 부분입니다.

 

원칙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신탁회사가 신탁사무를 처리하면서 수분양자와 계약을 체결한 경우, 신탁회사는 신탁재산은 물론 자신의 고유재산으로도 그 계약상 책임을 집니다(대법원 2004. 10. 15. 선고 200431883, 31890 판결). 이것이 법의 원칙입니다.

 

왜 그럴까요? 수분양자는 신탁의 내부 구조를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분양자로 나선 신탁회사를 믿고 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만약 신탁재산이 바닥나면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면, 수분양자는 계약을 체결할 때 신탁재산의 규모와 상태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 계약서 특약에는 "신탁재산 및 신탁계약의 업무범위 내에서만 책임을 부담한다"는 이른바 책임한정특약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특약이 유효하다면, 신탁재산이 소진된 경우 수분양자는 위약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 특약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상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내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 이유는 명쾌합니다.


수분양자는 거래 경험이 평생에 몇 번 되지 않고 관리형 토지신탁에 관한 전문지식도 없습니다. 신탁업계에서 이 특약이 통용된다고 해서, 수분양자가 별도의 설명 없이도 그 의미와 불이익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신탁회사가 이 특약을 계약 내용으로 주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분양자에게 그 내용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신탁회사는 그 입증에 실패했습니다. 계약서 말미의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는 포괄적 서명란, 분양계약자 확인서에는 책임한정특약과 무관한 일반적 내용만 있었습니다. 책임한정특약은 계약서의 다른 조항과 동일한 글자 크기와 색깔로 구분 없이 기재되어 있었고, 분양 홍보 과정에서 이 특약의 존재나 효과를 별도로 설명했다는 자료도 없었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신탁회사가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므로, 책임한정특약을 계약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확정했습니다. 신탁회사는 고유재산으로도 위약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위약금은 감액되지 않는다

 

신탁회사는 "위약금(총 공급금액의 10%)이 너무 과다하니 줄여달라"고도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매매계약에서 대금의 10%를 위약금으로 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거래 관행이고, 신탁회사가 수분양자에 비해 경제적 약자라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3. 수분양자라면 이것을 기억하세요

 

이 판결은 분양계약을 체결한 수분양자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입주가 3개월 이상 지연되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입주예정일로부터 3개월을 초과하여 입주가 지연된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면, 잔금을 먼저 준비하거나 별도로 최고(이행 촉구)를 하지 않아도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이 약정해제권이 수분양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신탁재산 범위 내 책임" 특약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계약서에 이런 특약이 있더라도, 신탁회사가 계약 체결 당시 그 의미와 불이익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는 증거가 없다면 그 특약은 효력이 없습니다. 신탁회사는 고유재산으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시공사가 잘못했어도 분양자인 신탁회사에 청구할 수 있습니다. 공사 지연의 원인이 시공사에 있더라도, 분양자로서 계약을 체결한 신탁회사가 수분양자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시공사와 신탁회사 사이의 내부 문제는 수분양자와 무관합니다.

 

4. 신탁회사·시행사라면 이것을 점검하세요

 

이 판결은 신탁회사와 시행사에게도 중요한 실무적 시사점을 줍니다.

 

책임한정특약을 계약서에 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특약이 유효하게 효력을 발휘하려면, 계약 체결 과정에서 수분양자에게 그 내용과 법적 의미, 불이익을 별도의 서면 자료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확인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단순히 계약서 말미에 "설명을 들었다"는 포괄적 서명을 받는 것으로는 설명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계약서 서식도 점검이 필요합니다. 법원은 책임한정특약이 일반 조항과 동일한 글자 크기·색깔로 구분 없이 기재되어 있다는 점도 설명의무 위반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중요한 특약은 시각적으로도 구분되도록 표시해야 합니다.

 

신탁법상 유한책임신탁 제도의 활용을 검토하세요. 신탁법은 수탁자의 책임을 신탁재산으로 한정하는 '유한책임신탁'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법적으로 안정적으로 책임을 한정할 수 있지만, 등기, 명칭 사용, 거래상대방에 대한 서면 교부 등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신탁법 제114, 115, 116) 책임한정특약보다 법적 안정성이 높은 방법입니다.

 

5. 이 판결이 갖는 의미

 

대법원이 이 판결에서 처음으로 명확히 선언한 것은 이것입니다.


"관리형 토지신탁의 수탁자가 신탁재산 범위 내에서만 책임을 진다는 책임한정특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약관법상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내용'에 해당한다." (대법원 2026. 2. 26. 선고 2023280945 판결)

 

이 법리는 앞으로 유사한 분양 사건에서 강력한 기준이 됩니다. 신탁회사가 책임한정특약을 주장하려면 설명의무 이행을 입증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고유재산으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분양 시장에서 관리형 토지신탁 방식은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이 판결은 그 구조 속에서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수분양자를 보호하는 중요한 안전망이 되었습니다.

 

분양계약 해제나 위약금 청구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